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묵재일기(默齋日記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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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52년 3월 23일 기사

二十三日己巳。

晴風。
○留堂。服黃耆湯。心氣不寧, 眼欲不開, 沈困。○下見兒等。○習射于簷下, 令也札拾矢來。○二道傳送韓興緖送筆二枝及書問。而浩有答, 崔副正亦有答。見之可慰也。○逃婢不還。○金山全萬鈞歷見。因聞呂應龜過勞於書, 心昏不記, 不得入試云云, 命也。○小川仲孫來納布貢七匹。

1552년 3월 23일 기사

맑고 바람 붊.
○당(堂)에 머물렀다. 황기탕(黃耆湯)을 먹었다. 심기(心氣)가 편안치 않고 눈도 뜨고 싶지 않을 정도로 매우 피곤하다. ○내려가 아이들을 보았다. ○처마 밑에서 활쏘기를 익히고, 야찰(也札)로 하여금 화살을 주워오게 했다. ○판관이 한흥서(韓興緖)를 통해 붓 2자루와 안부편지를 보냈다. 이호(而浩)의 답장이 있었고, 최(崔) 부정(副正)도 답장을 보냈다. 펴 보니 위로가 된다. ○도망간 비(婢)는 돌아오지 않았다. ○김산(金山)전만균(全萬鈞)이 들러서 보았다. 그에게 들으니 여응귀(呂應龜)가 글공부에 과로한 나머지 마음이 혼매해지고 기억을 못하여 시험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하니, 운명이다. ○소천(小川)의 노 중손(仲孫)이 신공(身貢)으로 포(布) 7필을 바쳤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