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묵재일기(默齋日記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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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55년 6월 13일 병자

十三日丙子。

陰乍雨日出。
○留堂。困怠, 憂心不降。○病子左右牽引之湎, 數數自動。藥則人參羗活散, 朝夕與服之, 淸心元和服。病久□□無多, 身日憊焉。大小便時時放下, 大便微利云。○李純仁來言“□□名抄後城主白活, 七月祥事已迫, 姑過此後赴防, 則招都廳敎之。而安偃督發時, 未及到者抄罰, 時吾亦例蒙, 當送蛇渡, 悶悶。請白而解之”云云。適城主伻人問子病。仍謝狀兼白此事, 則勿抄事行下云云。○安太居來見, 問病去。○朴大鈞李得荃·得中等來見去。○姜彦叟夕來見, 言“全羅道月出山窮倭數百屯聚, 我軍圍立, 勢當殲盡。右倭船三隻在海, 多張偶人于上, 只老弱守之。頭無岳等知而告之, 先討船斧破, 故不得走”云云, 卽去。○呂和卿送魚醢, 請救停金偕抄軍云。不能從之。○陜川李增榮借玉貫子去。

1555년 6월 13일 병자

흐리다 잠시 비가 내리고 해가 나옴.
○당(堂)에 머물렀다. 피로하고 지치며, 근심이 가시질 않는다. ○아픈 아들이 (고개가) 좌우로 끌려가는 것이 심하더니, 자주 저절로 돌아간다. 약은 인삼강활산(人參羗活散)을 아침저녁으로 주어서 청심원(淸心元)과 섞어 먹였다. 병이 오래되어 □□ 많지 않고, 몸이 날로 축 늘어져간다. 대소변을 수시로 흘리는데, 대변은 조금 설사라고 한다.
이순인(李純仁)이 와서 말하기를, “□□명에 뽑힌 뒤에 목사에게 발괄[白活]하여 7월 상사(祥事)장사를 지낸 뒤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가 이미 다가왔으므로 일단 이를 지낸 후에 방군(防軍)에 나가겠다고 했더니, 도청(都廳)을 불러 그것을 명하셨습니다. 그런데 안언(安偃)이 출발을 독촉할 당시 아직 도착하지 못한 자를 뽑아서 벌했는데, 그 때 저도 죄를 입어서 사도(蛇渡)로 보내지게 되었으니, 걱정이 됩니다. 말씀하셔서 설명해 주시기를 청합니다” 라고 했다. 마침 목사가 사람을 보내 아들을 문병하기에, 감사편지를 쓰고 겸하여 이 일을 아뢰니, 뽑지 말라고 분부했다고 한다. ○안태거(安太居)가 찾아와서 병에 대해 묻고 갔다. ○박대균(朴大鈞)이득전(李得荃)·득중(得中) 등이 다녀갔다. ○강언수(姜彦叟)가 저녁에 찾아와서 말하기를, “전라도 월출산(月出山)에 궁지에 몰린 왜인(倭人) 수백 명이 주둔하고 있는데, 우리 군사가 포위하여 형세가 섬멸할 만하답니다. 그들이 타고 온 왜선(倭船) 3척이 바다에 있었는데, 인형[偶人]을 배 위에 잔뜩 벌여놓고 노약한 병사만이 배를 지키고 있었습니다. 두무악(頭無岳) 등이 이를 알고서 보고해서, 먼저 배를 공격하여 도끼로 부수니 달아나지 못했답니다” 라고 하고는 바로 갔다. ○여화경(呂和卿)이 생선젓갈을 보내며, 김해(金偕)가 군사에 뽑히지 않도록 청해달라고 했으나, 들어줄 수 없었다. ○합천(陜川) 군수 이증영(李增榮)이 옥관자(玉貫子)조선시대 당상관 이상의 벼슬아치가 쓴 옥(玉)으로 만든 망건의 관자를 빌려서 갔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