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묵재일기(默齋日記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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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555년 7월 5일 정유

初五日丁酉。

大旱。
○留家。下見妻孥。共傷岳飛氏之逝。三女未嫁, 可怜也。○病子大便數下, 有白痢證云。○淑吉自巳時發熱, 兼有寒證。寒止而熱極困不起身, 又不引飮。熱上頷腮皆赤, 至未時末許汗出, 必是瘧證, 可慮。爲合二朮湯煎之。○牧伯惠送正米一石、太一石、木麥一石、租二石、魚網一、鋪陳等物。爲書謝之, 兼白郭季孫必伊等減下事, 則不答矣。○二道還自蛇渡云。○掃整竹廳。○令乭今飮二朮湯出乳汁飮

1555년 7월 5일 정유

크게 가뭄.
○집에 머물렀다. 내려가 처자식을 보았다. 함께 악비(岳飛) 씨의 죽음을 슬퍼했다. 세 딸이 아직 시집을 가지 않았으니, 가엽다. ○아픈 아들이 대변을 자주 누었는데, 백리(白痢)이질(痢疾)의 한 가지로 흰 곱똥이 많이 나옴 증세가 있다고 한다. ○숙길(淑吉)이 사시(巳時)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부터 열이 나고 한증(寒證)도 있었다. 한증이 그치자 열이 아주 심해져서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, 또 물을 마시지 못했다. 열이 올라와서 턱과 뺨이 모두 붉고, 미시(未時)오후 1시부터 3시 사이가 지날 무렵에는 땀이 나오니, 학질 증세가 틀림없어 걱정이 된다. 이출탕(二朮湯)을 조제해서 달였다. ○목사가 정미(正米) 1섬·콩[太] 1섬·메밀[木麥] 1섬·벼 2섬·어망(魚網) 1개·포진(鋪陳)바닥에 까는 방석·요·돗자리 등의 총칭 등의 물품을 보냈기에, 편지를 써서 감사를 표하며 겸하여 곽계손(郭季孫)·필이(必伊) 등을 빼달라고 말했는데, 답이 없었다. ○판관이 사도(蛇渡)에서 돌아왔다고 한다. ○죽청(竹廳)을 청소하고 정리했다. ○돌금(乭今)으로 하여금 이출탕(二朮湯)을 마시고 젖을 내어서 숙길(淑吉)에게 먹이도록 했다.